음식을 입으로만이 아닌 귀로, 눈으로도 맛보는 시대다. 여기저기 나오는 게 오직 ‘식’에 관련된 것들이니 셰프들은 스타가 되고 식도락은 어엿한 취미가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을 것 같지만 비슷한 음식을 두고 ‘내가 먼저니, 네가 먼저니’ 하는 논쟁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음식도 법의 보호를 받는 시대. 음식 특허에 대해 알아본다.
음식 특허에도 조건이 있다
특허권이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발명했을 때 당사자에게 법률적으로 주어지는 지적재산권을 말한다. 음식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독특함과 차별성이다. 그 차별성은 레시피와 제조 과정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기존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재료와 구성 비율이 독특하다면 레시피 관련 특허 등록이 가능하다. 또 음식의 제조 과정에서 새로운 공법을 발명했다면 역시 특허 등록이 될 수 있다. 신청 절차는 특정인이 특허 등록 신청(출원)을 하면 특허청에서 기존의 자료 검색을 통해 등록 여부를 심사한다. 만약 신청인이 제출한 요리가 기존의 특허 자료와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되면 등록되지 않는다. 여기서 일반 소비자가 주의할 점은 따로 있다. 가끔 미디어를 통한 음식이나 음식점을 홍보할 때 ‘특허 출원’이라고 하며 출원번호를 함께 기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특허 출원은 특허청에 접수했다는 뜻에 불과하며 특수성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특허를 받은 것과는 무관하다.
음식 특허 속 마케팅 전략
특허의 기본 목적은 권리 보호다. 내가 발명해낸 것을 남이 무상으로 도용하지 못하도록 법률적으로 정해놓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 특허는 그 특수성 때문에 일반적인 특허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나만의 조리법을 특허 등록했다고 치자. 다른 음식점이 그대로 내 것을 따라 했다고 해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손님상에 나오는 음식은 결과물뿐이니 주방 뒤에서 내 것을 도용했는지 아닌지 몰래 지켜볼 수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일례로 2년 전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신제품으로 ‘부추고로케’를 선보였다. 일부 빵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표절 시비가 일었다. 대전의 유명 향토 제과점인 성심당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부추빵’과 그 맛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특허권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는 그들의 신제품과 기존의 부추빵 간에는 레시피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레시피와 관련된 특허는 입증이 어려워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피해를 입어도 호소할 길이 어려운 레시피 관련 특허권을 내는 이유는 뭘까? 특허권 자체가 홍보나 마케팅 요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특허받은 ○○탕’이나 ‘특허받은 소스’ 등이 그것이다.
특허권에도 수명이 있다
모든 특허권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 특허를 받은 음식을 사용하고 싶다면 특허 소지자에게 일정 부분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특허권이 만료되는 20년 후에는 레시피나 제조 과정을 공유하고 사용해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아무리 독특한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부러 특허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원료나 제조법이 극비사항으로 다뤄지고 있어 100년 넘게 맛의 노하우를 이어가고 있다. 그간 일부 음료 업체에서도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해 유사한 제품을 생산했지만 코카콜라 특유의 맛과 중독성을 구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 특허권을 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출원 비용이 100만~200만원 선, 등록비와 3년까지의 유지 비용이 대략 100만원 선이다. 4년 차부터는 1년마다 유지비용이 드는데, 초기에는 5만~10만원 선이고 연차가 늘어날수록 유지비용도 늘어난다.
음식 특허 Q&A
‘특허법인 메이저’의 백상희 변리사와 함께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먹을거리 특허에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봤다.
Q 둥근 냄비 모양에 딱 맞게 들어가는 농심의 원형 라면. 이것도 특허라는데, 맞나? 지적재산권의 종류에는 특허, 실용실안, 디자인 등록, 상표 등록이 있는데 원형 라면은 특허가 아닌 디자인 등록에 해당된다. 빵이나 떡의 외형 모양의 특징이 있다면 역시 디자인 등록이 가능하다.
Q 해태 ‘허니버터칩’도 특허를 냈을까? ‘허니버터칩’의 경우는 특허권을 인정받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소스를 배합해 감자 칩의 맛을 내는 방법은 기존 과자에서 많이 보여줬고 제조 과정에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먼저 출원을 해놓고 선두업체의 지위를 다지는 방어용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실질적인 법의 보호를 받긴 어려울 것이다. 특허를 받지 않았으니 최근 유사 상품들이 줄을 이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Q 그렇다면 음식 특허는 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버터에서 마가린 등으로 재료만 슬쩍 바꾸고 다른 재료는 똑같이 사용해 비슷한 맛을 내도 보호를 받지 못하니 말이다. 음식을 출원할 때는 정확한 레시피를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고추장이 들어갈 경우 정확하게 10g으로 표기하기보다는 5g에서 20g 정도로 범위로 지정하기 때문에 따라 한들 쉽게 원조의 맛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Q 요리연구가 백종원에게 ‘대패삼겹살’의 특허권이 있다고 알려져있는데, 얇게 썬 냉동 삼겹살은 30년 전 동네 삼겹살집에서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된 건가? 삼겹살을 얇게 썬 레시피로는 특허를 인정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써는 장비라든지 기타 보조 도구에 대한 특허권은 가능하다. ‘대패삼겹살’은 1998년에 특허가 아닌 상표 등록을 했다. 상표 등록은 쉽게 말해 음식점 간판으로 ‘대패삼겹살’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음식과 관련한 상표 등록은 매우 중요한 지적재산권 중 하나로 20년으로 소멸되는 특허권과 달리 10년마다 갱신하면 평생 가져갈 수 있다.
Q 기막힌 음식을 만들어내 특허를 받고 싶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단 특허 자료들을 검색해보고 유넷 ‘키프리스(www.kipris.or.kr)’를 통해 누구나 검색이 가능하고, 요즘에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
<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도움말 / 백상희(특허법인 메이저 변리사, 02-558-7229)>
출처: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9&artid=201507291541541